마을을 지키는 수호신, 요광리 은행나무
좁은 길목 사이 벚나무가 자리해 시원한 그늘을 만들고 있는 곳, 금산군 추부면 요광리 마을. 벚나무 터널 끝에 다다르면 어릴 적 마중 나온 할아버지처럼 지긋하게 서 있는 은행나무 한그루가 눈에 들어온다. 하늘을 향해 힘 있게 뻗은 가지에서 강한 힘이 느껴지는 이 나무는 자그마치 천 살이 넘었다. 원래 이 나무의 주변은 모두 논이었지만 지금은 그 흔적이 사라졌다. 1990년 8월 문화재청에서 나무 보호를 위해 주변 논을 매입하고 토양을 복원했기 때문이다. 그만큼 요광리 은행나무는 오랫동안 조상들의 보살핌을 받으며 민속적·생물학적 가치를 높게 평가받아왔다. 현재는 천연기념물 제84호로 지정되어 보호받고 있는 중이다.
석 달 열흘, 화마에 시달린 노송
요광리 은행나무는 주민들과 함께 일제강점기를 견뎌왔다. 나무의 몸에는 그 시절의 아픔이 고스란히 남아있다. 끝이 없는 굶주림에 몸부림치던 주민들은 마을을 지켜온 은행나무 아래 살고 있던 쥐를 잡기 위해 불을 냈다. 그 불은 석 달하고도 열흘간 지속이 되었는데 일반적인 나무라면 전소되어 흔적조차 찾을 수 없을 것이다. 그런데 이 은행나무는 그 기간을 꿋꿋이 버텨냈다. 이것은 나무의 겉이 탄 것이 아니라 속에서 탔기 때문이다.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안에서는 계속 타들어 가던 나무를 살린 것은 마을 사람들이었다. 나무에서 연기가 피어오르는 구멍을 진흙으로 막자 불씨는 산소를 받을 수 없었고 이윽고 불이 꺼지게 되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이 화재로 인해 12m가 넘는 거대한 줄기의 속은 텅텅 비게 되었다. 이에 마을 사람들은 자신들의 실수를 뉘우치며 은행나무 속에 기름진 흙과 퇴비를 넣어 파인 부분을 메웠다. 다행히도 고령의 은행나무는 더 이상 썩지 않게 되었고 그 안은 넓은 공간이 생겨 마을 아이들의 놀이터가 되기도 했다. 이후에도 계속 화재의 아픔이 있었지만 성심성의껏 나무를 보살핀 마을 사람들의 노력으로 매년 요광리의 가을을 노랗게 물들이는 은행잎을 보여주고 있다,
인(人)을 위한 신목(神木)
요광리 은행나무는 요광리 사람들의 이웃이자 수호신이다.
이러한 은행나무를 마을의 수호신이라고 여기게 된 마을 사람들은 매년 정월 초사흘에 인근 동무산 산제당에서 산신제를 지낸 후 마을로 내려와 은행나무에도 제를 지낸다고 한다. 산제를 지내고 당제를 지내는 것은 여느 유서 깊은 시골 마을의 민속신앙과 크게 다를 바 없다. 다만 그 기원이 언제부터였는지 마을 사람 누구도 기억 못 하는 오랜 옛날부터 뿌리내려 온 민속신앙이라고 한다.
특이한 점은 제를 지내기 며칠 전에 은행나무 허리춤에 금줄을 친다는 것이다. 거기에 제를 지낸 후 길일(吉日)을 골라 철거한다. 대대로 내려오는 마을의 오랜 전통이지만 특별한 뜻은 없다고 한다. 금줄이 거두어지고 제사를 마친 마을의 신목은 다시 평소처럼 마음씨 좋고 수더분한 요광리 사람들의 이웃으로 돌아간다. 여담이지만, 요광리 은행나무에 처음 불이 났을 때 묘령의 여인이 은행나무를 바라보며 슬프게 울다 사라졌다는 이야기가 있다. 그 여인을 기억하는 마을사람들은 은행나무에 살고 있던 구렁이가 그 여인이라고 믿고 있다.
긴 세월 동안 마을을 지켜온 요광리 은행나무! 그 천 년의 이야기를 들으러 금산으로 출발~
글 트래블투데이 홍성규 취재기자
발행2018년 10월 15 일자